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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Politics

자유란 그 나라의 수준에 맞게 제한된다 - 앨빈 토플러

꿈을 위해 잠을 잊은 그대에게 2020. 3. 31. 10:52

 

 

박정희 모델이 남긴 명암의 간극만큼 그에 대한 평가도 상반된다. 한편에서는 ‘한강의 기적’을 진두지휘한 지도자로 칭송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경제개발 명분으로 민주주의를 억압한 독재자라고 깎아내린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박정희 모델에 점수를 후하게 매긴다. 유명한 일화가 있다. 1993년 세계은행 이사회에서 한국·일본의 경제 발전을 주제로 한 ‘동아시아로부터의 교훈’이라는 간담회를 연 적이 있다. 이때 김정렴 전 비서실장이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정책’이라는 기조연설을 했다. 연설이 끝나자 우수한 공무원을 확보한 방법, 이들의 헌신적 노력을 유발한 노하우, 기업체 내부 직업훈련 방식 등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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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모델이 남긴 명암의 간극만큼 그에 대한 평가도 상반된다.

 

 

한편에서는 ‘한강의 기적’을 진두지휘한 지도자로 칭송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경제개발 명분으로 민주주의를 억압한 독재자라고 깎아내린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박정희 모델에 점수를 후하게 매긴다. 유명한 일화가 있다.

 

1993년 세계은행 이사회에서 한국·일본의 경제 발전을 주제로 한 ‘동아시아로부터의 교훈’이라는 간담회를 연 적이 있다.

 

이때 김정렴 전 비서실장이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정책’이라는 기조연설을 했다.

 

연설이 끝나자 우수한 공무원을 확보한 방법, 이들의 헌신적 노력을 유발한 노하우,

 

기업체 내부 직업훈련 방식 등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간담회 말미에 세계은행 간부 바트(V. V. Bhatt)는 “한국의 경제 기적은 개발도상국과 자유경제로 전환하는 구(舊) 공산국가들에 크게 참고가 되겠다”고 총평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이루기란 어렵다.

 

박정희의 판단이 옳았다.

 

19~20세기에 무력으로 정권을 잡아 나라를 구한 혁명이 5개다.

 

일본의 메이지유신, 터키의 케말 파샤, 이집트의 나세르, 페루의 벨라스코, 그리고 한국의 박정희다.

 

이 중 경제 기적을 이룩한 혁명은 오직 박정희에 의한 것뿐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를 존경한다”고 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도 “민주화는 산업화가 끝난 후에나 가능하다.

 

이런 인물을 독재자라고 말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박정희는 누가 뭐래도 세계가 본받고 싶어 하는 모델”이라고 극찬했다.

 

『네 마리의 작은 용』의 저자이자 평소 한국 군사정권에 비판적 입장을 취해 온 에즈라 보겔 하버드대 교수도 노무현 대통령과 만나 “박정희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한국은 없다.

 

그는 헌신적이었고, 개인적으로 착복하지 않았으며 열심히 일했다. 국가에 일신을 바친 리더였다”고 평했다. 

 

공산권 지도자의 평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박정희 관련 책은 다 가져 와라.

 

그는 나의 모델”이라고 했고, 중국 개방을 이끌었던 덩샤오핑(1904~97)은 평소 “박정희는 나의 멘토”라고 말했다.

 

 

미국 랜드(RAND) 연구소는 “덩의 개혁은 박정희 모델을 모방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http://sunday.joins.com/archives/18804

“박정희가 옳았다”

박정희 모델이 남긴 명암의 간극만큼 그에 대한 평가도 상반된다. 한편에서는 ‘한강의 기적’을 진두지휘한 지도자로 칭송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

sunday.joins.com

 

'제3의 물결' 앨빈 토플러가 말하는 민주화의 조건

http://news.joins.com/article/2749891

&#34부자 되기 위해 나라가 클 필요는 없다&#34

<!--img_tag_s--><!--img_tag_e-->1970년에 '미래의 충격', 80년에 '제3의 물결', 90년에 '권력이동', 2006년에 '혁명적인 부(Revolutionary Wea...

news.joins.com

 

 

 앨빈 토플러(79)는 미국 뉴욕 출생의 세계적인 미래학자로 1970년 펴낸 '미래의 충격(Future Shock'과 80년 내놓은 '제3의 물결'로 명성을 얻었다. 지난해 '부의 미래'라는 책을 내고 전 세계를 돌며 강연을 할 정도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의 저서 대부분은 부인 하이디와 공저다. 그는 "우리집에서 밖으로 나가는 글들은 보통 내가 쓰고, 하이디가 읽어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토론한 뒤 수정한다"며 "아내는 날카로운 비평가이자 좋은 동료"라고 말했다. 

 

 토플러는 방대한 자료 수집과 인터뷰를 토대로 책을 써서 저술 기간이 긴 것으로 유명하다. '부의 미래'는 11년, '제3의 물결'은 10년, '미래의 충격'은 5년 걸렸다. 얼마 전까지도 자료 수집을 직접 해오다 최근 저널리스트 출신의 비서를 채용해 도움을 받고 있다. 토플러 부부는 4일 서강대에서 경영학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https://ko.wikipedia.org/wiki/%EC%95%A8%EB%B9%88_%ED%86%A0%ED%94%8C%EB%9F%AC  -앨빈 토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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