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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영구평화론은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등과 달리 주저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저서이다.
영구평화론에서 칸트의 철학적 고찰은 오늘날 국제정치분야에서 민주주의 평화론으로 계승되고 있으며
신현실주의 평화론에 대한 경쟁적 대한으로 위치하고 있다고 평가를 받고 있다.
칸트는 영구평화의 수립이야말로 법의 궁극적 목적이며 정치의 최고선이라고 여겼다.
특히, 이 평화의 문제를 접근하는데 있어서 먼저
개인간의 관계에 있는 정의의 문제를 논한 다음 이 정의의 문제를 국가 수준, 국제 수준으로 확대시켜 나가는 독특한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칸트가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시대적 상황을 간단히 설명하고 주요 논점을 설명한 뒤 이를 연결지어 이승만의 자유주의 사상을 설명해보겠다.
18세기 유럽은 프랑스 대혁명으로 인해 혁명의 기운이 유럽 전체로 번져나가고 있을 시기.
유럽의 여러 국가는 동맹을 맺고 프랑스에 대항하여 싸우나 강력한 프랑스 군 앞에 좌절하고
이에 칸트의 조국 프러시아는 프랑스와 평화조약을 맺게 되는데 이게 1795년 바젤 조약(Basel treaty)이다.
하지만 칸트는 이 바젤조약을 진정한 평화에 도달케 하는 확실한 보장이 되지 못하고 종전의 평화조약과 같이 단지 하나의 휴전으로만 생각하게 된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영구평화를 달성하기 위하여 자신의 가상적인 평화조약안을 제시하게 되는데
먼저 개인간의 자유와 평등의 문제로부터 정의의 문제를 논하고 이를 국가간의 관계, 인류공동체의 문제로 확대적용 함으로써
궁극적인 평화의 문제에 접근하는데 이를 토대로 쓰여진 것이 바로 영구평화론이다.
영구평화론에서는 칸트는 세 가지 확정적 조항(definitive articles)를 제시하는데 이것이 전제가 되었을 때 항구평화가 보장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 말아야 할 6가지 전제도 있는데 이는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낮고 너무 길어질거 같아 생략한다)
<제 1의 확정조항>
모든 국가의 시민적 정치 체제는 공화정이어야 한다.
-> 국가 아래 백성이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누리려면 대의민주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소수의 국왕, 귀족, 기사 계급 등의
이해관계에 따라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되어 무고한 백성이 희생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전쟁선포를 하려면 공화정체에서는 의회의 비준을
받아야 하는데 이는 1인 체제인 왕정국가에 비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구적인 평화를 위해 온 세계는 자유공화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 2의 확정조항>
국제법은 자유로운 국가들의 연방 체제에 기초하지 않으면 안된다.
-> 자유공화정을 가진 국가들이 멤버가 되어 자유국가 연합체를 구성하고 국제법을 제정하여야 하고 모든 나라의 법이 상호교환될 수 있는 법이 존재해야 한다
고 주장한다. 즉 국제 연맹, 국제 연합의 모태가 되는 것이다.
<제 3의 확정조항>
세계 시민법은 보편적 우호의 조건들에 국한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에겐 그 나라를 거쳐 이동하거나 일시적으로 체류할 권리가 있다.
-> 누구든지 자유롭게 세계를 이동하고 통행할 권리를 주장한다. 즉 자유통행권의 부여를 언급하고 있다. 이 자유통행에서 자유통상이란 개념이 파생되는데
자유통상으로 인한 이익이 있는 곳은 전쟁이 없다는 것이 대전제이다. 왜냐하면 전쟁이 일어나는 곳에선 물건을 팔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칸트가 주장하는 영구평화의 3가지 대전제이다. 그럼 이제 이승만에 대해 알아보자.
순서대로 이승만의 대표 저서라고 할 수 있는
한성감옥 수감 시절 옥중에서 기고한 <독립정신>, 프린스턴대 박사 학위 논문 <미국의 영향을 받은 영세중립론>, 일본의 침략을 예견한 <일본내막기>
이 책들에서 공통적으로 꿰뚫는 개념은 바로 '통상' 이며 책에서 언급하는 개념은 칸트가 얘기한 3가지 확정적 조항과 같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이 칸트의 사상과 이승만의 사상이 연결되어보는지 살펴보자.
1. 이승만과 칸트 ― 자유공화정
제중원 의사 에이비슨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한 번은 그[이승만]가 상당히 흥분돼 자신의 일생을 조국의 정부형태를 바꾸는 것을 돕는데 바치기로 결심했다고 내[에이비슨]게 말했다.”
―Avison, Memories of Life in Korea , p.262.
청년 이승만은 반역자의 길을 걷고 있었다. 당시 왕정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은 많지 않다. 후에 대통령이 된 이승만은 에이비슨에게 편지를 보낸다.
“나는 당신이 제중원 뒤의 언덕에 있던 우리 집에 거의 일요일마다 와서 나를 상대로 영어를 연습하고 한국의 장래에 대해 이야기하던 때를 잘 기억합니다.
당신은 그때도 젊은 모반자였지요. ⋯ 당신이 그때에도 밟고 있던 그 길이 얼마나 위험한 길이라는 것에 대해 내가 경고해준 것을 기억하시는지 모르겠군요.
내가 하는 말을 조용히 듣고 한참 있다가 ‘그래도 나는 하겠습니다.’ 하던 당신을 나는 잘 기억합니다. 그리고는 당신은 초지대로 했지요. ⋯
왕이 아프거나 병이 있다고 생각하였을 때 [나는] 그 분을 진찰하러 [궁에] 갔다 와서는 왕위가 폐기된 후의 장래에 대해서 당신과 토론을 하곤 하였으니 ⋯
분명히 우리 둘은 반역자들이었지요.”
―이정식,『이승만의 구한말 개혁운동』, 309쪽.
반역자 이승만이 바꾸고 싶어 하는 정부형태는 왕정을 폐지하고 그것을 대체한 공화정이었다.
“대체로 혁명이라 하는 것은 백성들이 일어나서 정부를 뒤집고 자신들의 뜻대로 다시 조직하는 것을 말하는데 동양의 역사에는 없는 일이다. ⋯
그 임금이나 임금의 세대만 고쳤을 뿐, 그 정부의 제도와 국권의 지배층은 변하지 아니한 [것은 혁명이 아니다.]”
―이승만, 『한국교회핍박』, 하와이, 신한국보사, 1913, 78-79쪽
청년 이승만의 생각을 가장 잘 엿볼수 있는 대목이 아래 이어진다.
"대저 공화라 하는 것은 …‘백성이, 백성으로, 백성을 위해’ 세운 정부라는 것이 곧 이것이라. 그런즉 공화정체는 군주정체와 반대니 이는 한 사람이 다스리는 것이요, 사부정체와도 반대되니 이는 일본사람들의 소위 귀족정체라 하는 것으로 위에 있는 양반끼리 다스리는 것이요, 소수정체와도 반대니 이는 적은 수효의 몇몇 사람이 짜고 앉아 다스리는 것이라. 오직 모든 백성이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공동히 합하여 다스리는 것을 곧 공화라 하는지라."
―이승만, 「미국헌법의 발전」, 『태평양잡지』, 1914년 2월.
백성이, 백성으로, 백성을 위해 누구의 말인가? 바로 링컨의 말이다. 오직 모든 백성이 평등한 권리를 공동히 합하여 다스리는 것이 공화이다.
이 대목에서 이승만은 왕이 다스리는 왕정이 아닌 만민이 다스리는 자유공화정에 대한 인식과 열망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이승만은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1910년 귀국하는데 던진 말 가운데 하나는 이렇다.
“귀국하고 보니 시원한 일이 세 가지가 있는데 임금이 없어진 것, 양반이 없어진 것, 그리고 상투가 없어진 것”
하지만 한반도는 당시 자신이 원하던 공화혁명보다 국권상실이라는 비극이 도래한 상황이었다.
“내[이승만]가 무엇 때문에 7년 동안 감옥에서 보냈고 고문 받았는지 아시오? 바로 그러한 [억압과 착취] 제도 때문이었소.
나는 일본의 지배가 이보다 더 나쁘기 때문에 아직도 항거하고 있는 겁니다.”
―Oliver, Syngman Rhee The Man behind the Myth, p.7.
백성들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집권 세력이 중심이 되는 왕정국가를 없애고 만민이 모두 다 평등한 정부를 원했던 이승만.
이승만은 자유공화제도 사상은 칸트 영구평화사상의 첫 번째 의무조항(the first definitive article)과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개별국가의 헌법은 공화제여야 한다.”
2. 이승만과 칸트 ― 자유국가연합제도
칸트는 국가 사이에 약육강식의 논리가 아니라 공존공생의 원리가 성립하려면 자유통상이 평화 속에서 유지되는 어떠한 형태의 국제조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
다. 그리고 그것은 감성이 아니라 이성이 가능케 하며 칸트는 그것을 평화연합 foedus pacificum 이라고 불렀다.
이것이 칸트의 두 번째 의무조항(the second definitive article)이다. 이승만은 이를 간결하게 표현한다.
사람이 사람에게 대한 권리가 이러함에 나라가 세상에 대한 권리가 또한 이러하다.
―이승만, 『독립정신』, 42쪽.
공정한 정부 밑에서 약한 사람 강한 사람 나눌 것 없이 모두 동등하게 자유와 권리를 누리면서 함께 산다는 것이다.
이를 확장해서 세계에 세계기구와 국제법이 있고 그 아래에서 약한 나라 강한 나라가 함께 어울릴 수 있다면 함께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승만의 독립에 대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바로 세상에 대한 권리인 것이다.
“자유국가연합에 기초하여 개별국가의 법률이 제정되어야 한다.”
―Kant, Smith (tr.), Perpetual Peace A Philosophical Essay, p.128.
"우리도 하로 바삐 법률을 고쳐 남과 같이 되고 [그러나 법률만] 가지고는 만국공회에 참여할 수 없고 … 서양문명한 나라들의 교[회]를믿는 남녀가
각국 인민들을 위하여 행하는 일을 많이 모본하여[야 한다.]"
―이승만, 『독립정신』, 273~274쪽.
만국공회는 국제연맹이나 국제연합 같은 자유국가연합체를 일컬으며 법률을 고쳐 남과 같이 되고~는 '통상'을 가리킨다.
그러나 통상과 함께 기독교 정신을 강조하는데 그 이유는 이렇다.
고려 시대 때는 불교, 조선 시대 때는 유교 이승만은 이를 보며 민족의 새로운 정진은 기독교에 있다고 본다.
당시 전 세계 상등국가들은 모두 다 국가이념이 기독교였다. 즉 이승만은 기독교를 통해 나라가 부강해지길 바랬던 것이다.
그래서 이승만은 미국 유학 당시 프린스턴대 박사 학위와 함께 프린스턴대 세미나에서 신앙을 공부한다. 즉 통상과 선교를 같이 한 것이다.
이승만의 또 다른 저서인 <Japan Inside Out: The Challenge of Today>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만일 국가의 규모가 작고 크고 간에 또는 정체가 민주적이든 전체주의적이든 그 국가의 평화를 위하여 지도력이 필요한 것이라면 그것은 국가결합의 평화를 위해서도 똑같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사회는 인간사회와 마찬가지로 구성분자의 전체적인 평화를 위하여 모든 일을 지휘할 지도력을 갖지 못할 때는 [평화는] 타격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Rhee, Japan Inside Out, p191
여기서 말하는 국가사회는 국제연합이라 볼 수 있다. 즉 자유국가연합제의 국제연합이 제 역할을 다 못 한다면 질서가 무너짐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이승만이 사용하는 국가가족 a family of nations, 국가결합 a combination of states, 국가사회 the society of nations는
만국공회에서 발전한 것으로 모두 칸트의 평화연합에 해당하는 개념이다. 그것이 바로 후일 창설된 국제연합이다.
칸트는 자유국가연합체를 언급하며 지도국가가 있어야 한다고 언급하는데 바로 미국을 지목한다. 당시 칸트가 미국을 지목한 시기는 1795년 미국은 1776년 20
년 전에 독립한 신생국가 였다. 그러한 나라를 보고 이제 시작되는 이 나라가 앞으로 자유국가의 틀을 구성해 나갈 것이라고 말한다.
여담으로 서재필이 미국으로 망명하였을 때의 미국의 군사력은 루마니아보다 작았다. 당시 세계의 슈퍼파워는 미국이 아닌 대영제국.
하지만 칸트는 미국이 무서운 나라이면서 패권 국가로 발돋움할 것이란걸 예측했다.
또한 보이지 않는 손으로 유명한 영국의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도 미국을 독립시키면 이 나라는 무서운 나라가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결국 미국은 세계 질서를 주도하는 패권 국가로 성장한다.
"칸트의 이러한 사상은 1차 세계대전 후 국제연맹 규약에 반영되었다."
3. 이승만과 칸트 ― 자유통행, 자유통상
이승만의 박사 학위 논문의 주제는 경제학, 국제통상법제학, 국제통상법제사에 입각하여 '통상(commerce)' 을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승만에게 찾아볼 수 있는 하나의 독특한 점은 바로 통상이 평화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당시 통상의 중요성을 얘기하는 지식인들은 있어도 통상이 평화를 가져온다고 주장한 사람은 이승만 이외는 없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다 싶이 칸트도 또한 통상이 평화를 가져온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이승만은 이런 생각을 하게된 것일까? 1905년 옥중에서 쓴 독립정신을 보자.
"상업으로 흥왕시켜 각국의 재물을 벌어드리며 공법과 농업을 부지런히 하여 재물이 부요함에 사람이 따라 귀중하여지며"
―이승만, 『독립정신』, 14쪽.
"[조선이] 아직까지 부지하여 온 것은 다 외국들의 교제상 서로 관계한 형편에 달려된 것이라. 만일 지금껏 통상이 아니 되었다면 어떤 강한 나라이 무슨 욕심을 부렸을 런지 알 수 없을지니 오늘날 이 뜻을 깨쳐본 즉 전일에 까닭 없이 남[외국인]을 의심하던 것이 어찌 어리석지 않으리오."
―이승만, 『독립정신』, 159쪽.
이승만은 여기서 우리나라를 전세계의 시장으로 만들면 어느 특정한 나라가 우리나라를 집어삼키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어서 나오는 말이 아주 중요하다.
"각 국이 그 나라의 상업관계가 있는 곳은 전쟁이 없게 하고, 나에게 없는 것과 남에게 있는 것을 서로 바꾸면 피차에 이익을 보는 것이며"
―이승만, 『제국신문』, 1901년 4월 19일.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이승만은 통상=상호이익=평화 등식을 제시한다. 뒤이어 칸트의 글을 인용해보겠다.
"통상정신이 조만간 모든 사람을 하나로 붙잡는데 이것은 전쟁과 병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Kant, Nisbet(trans.), "Perpetual peace A Philosophical Sketch,"
칸트는 통상정신이 사람들을 하나로 모아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되며 이는 곧 평화를 가져온다는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이승만과 칸트가 동시에 통상은 상호이익을 가져다 주며 이는 곧 평화와 연결된다는 공통적인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추가로 덧붙이자면 이승만은 경제학적으로도 해박한 지식을 보여준다.
“비컨대 밭에 좋은 씨를 뿌릴진대 처음은 잘 되다가 해마다 그 씨를 받아 땅에 다시 심으면 점점 줄어지고 줄어들어 필경은 잡풀과 같이 되고…”
―이승만『독립정신』, 59쪽.
이것은 경제학적 관점에서 무엇을 믜미하는가? 바로 한계 생산성 체감의 법칙이다. 그럼 문제 현상을 파악했으니 이를 해결하는 방안도 제시했을까?
“하루 바삐 새 기운을 받지 않으면 … 몇 세대를 지나지 아니하여 종자도 구하기 어렵게 되리로다.”
―이승만『독립정신』, 61쪽.
현대어로 바꾸면 기술혁신이 없는 한 생산성 하락은 어쩔 수 없다는 뜻이다. 기술혁신에 대한 통찰력으로 또한 이러한 말을 한다.
“수많은 농기구와 옷감 짜는 기계를 만들어 수많은 사람들이 땀 흘리고 하던 일을 기계를 이용하여 한 두 사람이 쉽게 해내며, 매일 신기한 것들을 만들어 내고 있으니 앞으로 백 년 동안 얼마나 많은 변화와 발전이 있을지 짐작하기 어렵다.”
―이승만『독립정신』, 63쪽
기술진보 가능성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표하는 것이다. 기계문명을 생각하고 있고 미래가능성을 제시했다. 이 모든 것은 이승만이 옥중에서 집필한 1905년 <독립정신>에서 나온 것이다. 당시 서구에서 한계생산 하락의 법칙이 이론적으로 정착된 것이 얼마되지 않은 시점이었고 더욱이 기술혁신이 그 하락을 막을 수 있다는 발상은 아직도 이론적으로 정착되지 않은 시점던 것을 고려하면 경제에 대한 통찰력 또한 알 수 있다.
"국가들간의 자유로운 왕래는 통상을 하게 하며 이는 곧 평화를 가져온다"
3줄 요약
1. 독일의 칸트는 1795년 전쟁이란 시대적 상황에서 영구평화를 위해 1. 자유공화정 2. 자유국가연합제 3. 자유통행->자유통상->평화를주장한다.
2. 약 100년 뒤 조선의 자유주의에 심취한 이승만은 3가지 주장을 한다. 1. 자유공화정 2. 자유국가연합체 3.자유통상->평화
3. 칸트는 당시 유럽의 프랑스 혁명으로 인한 전쟁 속에서 세계 평화를 구축하고자 한 주장과 조선의 부국강병을 이룩하고 나아가 독립하여 통상을 하여 궁극적으로 세계 평화를 이룩하고자한 이승만의 주장이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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