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종료 직후 세계에서 바라본 조선은 일제의 식민피해국이 아니라 전범 지원국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일본 영토내의 한 지방으로 인식됨 일본과 묶여서 함께 처벌 대상이었다. (세계 2차대전 독일-오스트리아 관계나 고려시대 몽골간섭기 시절 여몽연합군과 유사) 프랑스처럼 맞서 싸운 흔적이 있어야 되는데 광복군 총병력 339명으론 씨알도 안먹히는 상황 (참고로 자유프랑스군 병력은 정규군만 15만에 독일 치하의 프랑스 내의 레지스탕스만 20만이 넘었음) 이때 이승만은 광복군 총병력이 5만명이라고 과감하게 거짓말을 한다. 미국은 이승만을 믿었고 조선은 간신히 전범지원국의 혐의를 벗게됨으로써 독립을 확보함 이승만을 욕하면서 김구가 건국대통령이었어야 된다고 사람들이 많은데 김구는 해방전까지..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재조명 - 건국대통령 이승만의 주요 업적 30가지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으로 산업화의 기반을 닦은 대한민국을 세운 이승만 대통령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사와 텍사스대학교오스틴캠퍼스 대학원 석사, 카네기멜론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를 받았고 미국 웨스트버지니아대학교 행정학과 및 정치외교학과 조교수, 조지타운대학교 정책대학원과 경영대학원 조교수와 자본시장연구소 연구교수, 아시아공공정책연구소 소장, 스탠퍼드대학교 후버연구소 연구원과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 최고위과정 주임교수와 정경대학 행정학과 학과장 및 행정대학원 주임교수 및 정경대학 부학장을 지냈으며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행정학과 교수와 한국대통령학회 회장, 한국대통령학연구소 이사장과 소장으로 있는 함성득 고려대 교수팀이 1999년 임기중 업..
기억하십니까? 64년 전 겨울은 그들에게 가장 추웠던 기억으로 다가오는 장진호 전투가 있었던 겨울입니다. 이오지마를 점령하기 위해 36일간 6100여명이 전사했습니다. 하루에 169명... 장진호 전투는 17일 기간동안 3100여명이 전사했습니다. 하루에 182명... 미해병대 역사에서 가장 큰 희생이 있던 전투였고 많은 대원들이 적의 총탄과 혹한의 추위에 죽어갔습니다 당시 해병1사단과 함께 장진호 전투를 끝까지 한 종군여기자 마거릿 히긴스 (업적) 개전 초기 맥아더와 한강 방어선 시찰 한강철교 폭파 목격 오산전투(미군최초전투) 동행 낙동강 방어선에서 취재와 부상병 치료를 같이함(마이켈리스대령(훗날 주한미군사령과)이 극찬) 마산 방어전 취재 통영상륙작전( 한국 해병대에 "귀신 잡는 해병대" 별칭 붙여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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